멀쩡한 건물을 학원으로 못 쓴다니…

by 이엠건축사 posted Aug 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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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어학원장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아파트 상가로 어학원을 옮길 계획을 세웠지만 6개월째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그는 올해 1월 상가 2층을 분양받았다. 지금 들어 있는 학원 건물은 한 개 층의 면적이 좁아서 두 개 층을 함께 쓰고 있는데, 계단 때문에 유치부 학생들의 불편이 적지 않았다. 새 상가는 2층이지만 경사면에 지어져 1층처럼 지상에서 출입하기도 편리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됐다. 경사면을 파서 건물의 뒷면이 땅속에 묻힌 모양이어서 바깥에서 보기에는 2층이지만 건축물 대장에는 ‘지하층’으로 분류돼 있었던 것이다. 재건축조합이나 건설 회사들은 용적률 적용을 받지 않기 위해 사실상 지상 건물이지만 서류상으로는 지하층인 공간을 선호한다.

옮기려는 상가도 2층의 4개면 중 3개면이 모두 지상으로 트여 있고 출입문도 갖췄지만 지하층으로 분류돼 있다. 문제는 외견상 멀쩡한 이런 건물이 학원으로는 쓰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2007년 3월 학원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학원의 설립 조건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은 조례로 위임했는데, 아직까지 서울시의 학원 조례는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면 경기와 인천, 부산, 전남, 전북, 경남, 충남 등에서는 ‘유사시 대피 가능한 외부 출구가 2개 이상일 경우에는 학원 시설로 사용할 수 있다’는 조례를 만들어 자원의 합리적 이용을 꾀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서울시교육청도 이런 합리성 때문에 개정의 필요성을 알고 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008년 9월 ‘건물의 한 면 이상이 지상에 완전 노출되어 있고 출입문이 있는 경우에는’ 학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조례 개정안을 만들어 입법예고까지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개정안을 서울시교육위원회에서 상정조차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거론된다.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공정택 교육감은 학원 편’이라는 일부 시민단체의 여론이 무서워 학원들의 편의를 봐주는 듯한 개정안을 상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육청 내부에서는 시민단체들의 이런 시선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물론 학원이 가지는 사회적 이미지와도 적지 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뭐 학원 편의까지 봐 줘야 하느냐는….’

그러나 학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공 교육감의 정치적 처지를 떠나 합리적인 정책은 시행되어야 한다. 옳은 것은 옳은 대로 추진돼야 우리 사회가 한 발짝이라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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